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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제2의 후원팀, 왕옥미 후원회원 인터뷰

매일 길을 나서기 전 가방에 꼭 챙기는 것, 짐이 무겁더라도 드립커피를 내리기 위한 도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길 한켠 자리를 펴고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부어 서서히 드립커피를 내린다. 사실 커피는 길 위의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몫이었다. 나눔이 곧 일상인 왕옥미 후원회원(7-1코스 올레지기)을 만나, 그녀가 좋아하는 매화가 만개한 이른 봄을 배경으로 길과 나눔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소 길은 자주 걸으시나요? 길은 언제부터 걷기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서 제주 곳곳을 부지런히 걸었어요. 가족과 함께 걸었던 길이 지금의 올레길이 됐죠. 제주올레 길을 많이 걷는 사람을 꼽으면 아마 제가 열 손가락 안에 들 거에요. 지금도 하루에 10km 이상은 꼬박 걷고 있어요. 걷고 나면 너무 좋아요. 자고 일어나면 또 걷고 싶고. 오늘 7코스 걸었잖아요. 내일 다시 7코스 걸으면 느낌이 또 달라요. 또 가도 또 좋죠. 내일 가면 바다 색깔이 다르고 구름 형태가 다르고, 오늘은 이 사람하고 걷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하고 걸으니까 질릴 수가 없어요.

 

- 걸으면서 ‘올레길 효과' 를 경험하셨나요?

 

내 정신을 반듯하게 세워줬어요. 힘들 때 올레가 기운이 되게끔 만들어 주었지요. 올레길을 쭉 걷다 보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길을 걷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에 미운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더라고요. 상대방을 미워하다보면 그 손가락질이 결국엔 나를 향해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저 불쌍한 사람...’ 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해요. 사실 올레길에선 풍광에 빠져 있다 보면 웃음만 나오고 누굴 미워할 수가 없어요. 하늘과 구름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하면서요.

 

- 가장 좋아하는 코스를 여쭤보면 올레지기를 맡고 계신 7-1코스라고 말씀하시겠죠? 7-1코스 제외, 요즘엔 어떤 코스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5코스요. 서귀포의 한 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 길을 걸을 때는 편안하고 좋아요. 한적한 길을 쭉 걸으면 너무나 행복해요. 사실 5코스는 개장할 때 제가 리본을 맸거든요. 그때는 지금처럼 나무 화살표도 없고 학교 책상에 보면 고무 패널을 오려서 스프레이로 색을 칠했었어요.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그때 기억은 9월 말인가 10월 말쯤에 미깡(귤)이 조금 익기 시작할 때에요. 탐사팀과 길을 걷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수호야(고 송수호, 당시 제주올레 코스운영실장) 여기 미깡(귤) 쪼끄마한 거 따먹어도 될까?’ 하고 물었는데 매정하게도 단번에 ‘안돼’ 하더라고요. 올레길에선 꽃 한 송이도 꺾으면 안 된다고요. 그 길에 갈 때면 지금 세상에 없는 ‘수호’ 생각이 많이 나지요.

 

 

- 올해 선생님을 통해서 벌써 두 분이 후원을 결정하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후원을 권유하는 게 거절 당하지는 않을까 용기를 내야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두려워요. 거절하면 말지 뭐. 우리가 제주올레 길을 입장료 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나만 제주올레를 좋아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질 때가 있는데 사실 다들 보면 내 마음과 같더라고요. 후원을 해야지 생각은 하는데 결단을 못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럴 때 제가 옆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부채질 해주는 정도죠. 길을 걷다가 차를 나눠 마실 때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지나가듯이 ‘후원하매?’ 물어요. 일시 후원하다가 정기 후원을 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서 잘하고 있다고 우리가 제주올레에 해줄 건 그거 밖에 없다고 칭찬도 하고요.

 

- 선생님의 이런 내막을 모르고 겉에서 계속 후원을 권유하는 모습만 본 사람들은 제주올레와의 관계를 의심하지는 않나요?(웃음)

 

하하. 아이고 웃기고 있네. 죽을 때 다 못가져 간다니까. 서로 베풀면서 사는 거에요. 남을 위해 노력하면 다시 그만큼 나에게 돌아와요. 최근에 강정포구 길을 걷고 있다가 어렸을 때 같이 수영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요. 친구들끼리 수영이 끝나면 당시 중국집을 운영하던 우리 집에 쪼르르 달려가 같이 짜장면을 먹기도, 크래카(크래커)를 먹기도 했었죠.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초밥을 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언젠가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죠.

 

- 올해 목표가 ‘후원자 10명 채우기’ 라고요. 많은 숫자 아닌가요?

 

박인숙이 하나. 미용실이 둘. 이제 8명이 남았어요. 이게 될지는 모르겠네. 저도 후원자인데 그렇게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들은 ‘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후원을 많이 하는데 왜 네가 후원을 하냐’ 고 해요. 근데 내가 당당해야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거든요. 내가 하지 않으면서 권하는 건 아니에요. 제주올레에서 일하는 식구들이 길을 유지하기 위해 박봉임에도 고생하는 걸 알고 있어요. 막 부려먹을 게 아니고 시간도 많이 뺏으면 안되고 일도 적당히 시키면서 월급도 충분히 줄만큼 주면서 일을 시켜야 돼요. 이런 동기들이 있으니 열심히 목표 달성을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