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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이야기/명예의 전당

인터뷰 I ‘짱가’처럼 제주올레에 나타난 벤타코리아 김대현사장



벤타코리아 김대현 사장(49)은 제주올레 초창기 때부터 (사)제주올레 살림 걱정을 가장 많이 해온 후원자다. ‘행정으로부터 운영비 지원을 받지 않고 재정자립을 해야 올레 길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운 서명숙 이사장 덕에 (사)제주올레는 후원금과 기념품 판매 수익만으로 운영해야 했다. 길에 화장실을 넣거나 큰 돈이 들어가는 인프라 시설은 행정의 도움을 받지만, 올레 길의 일상적인 유지보수와 운영 관리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은 (사)제주올레 스스로 만들었다. 이러니 재정확보에 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김대현 사장은 제주올레가 궁할 때마다 ‘짱가’처럼 나타났다. 제주올레의 가장 오래된 친구기업으로 매달 후원금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제주올레 사무국의 자동차, 프린터, 마이크와 스피커, 공기청정기 등 그가 마련해 준 살림만 해도 적지 않다. ‘보네이도 아트 콜라보레이션 작품 경매’나 ‘제주올레와 함께 하는 서울섹스폰콰르텟 공연’ 같은 이벤트를 기획해 그 수익금을 제주올레에 기부하기도 했다. 올레 길을 활용한 지역민의 가장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는 ‘무릉외갓집’ 역시 그의 아이디어와 지원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왜 제주올레를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봤다. 

 

 

 

 

 

 

Q. 제주올레를 왜 후원하나?

좋으니까! 길이 좋고, 그 길을 내는 사람들이 좋고, 그 길 위에 사는 사람들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좋으니까.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지속하지는 못했을 거다.

 

Q. 아무리 좋아해도 제주올레를 너무 많이 후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제주올레 식구들은 오히려 벤타코리아의 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푸하하하. 제주올레 식구들의 그런 태도가 오히려 나를 더 채찍질한다. 매해 연말, 회사 실적을 정리하면서 제주올레에 필요한 물품 하나씩 선물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한 살림살이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제주올레는 “그만 하면 됐다, 나중에 돈 더 벌어 후원해라”라고 하지 않았나.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더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제주올레 식구들은 후원하는 사람들의 형편과 마음까지 헤아리더라. 그러니까 더 주고 싶어진다.

 

Q. 제주올레와 맺은 인연을 후회해 본 적은 없나?

단 한 순간도 없다. 2008년 제주올레 식구들과 함께 제주올레 9코스를 걸으면서 제주올레와의 첫 인연이 시작됐다. 그 날 길의 풍광도 감동이었지만, 그 길을 낸 사람들의 모습에 더 감동을 받았다. 사무국 직원도 사무실도 없었던 그 시절, 올레 길에서 사람을 발견하면 ‘걷는 사람들이 있다’며 신기해하던 그 시절에서 오늘 세계적인 제주올레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도울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내게는 영광이고 행복이다.

 

Q. 제주올레를 후원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아들에게 인정받았을 때다. 2009년 연말인가. 아들과 아들 친구들을 데리고 올레 길을 여행했다. 그 여행을 마치고 아들이 “아빠, 제주올레는 정말 멋진 곳이어요. 이곳을 아빠가 후원하는 것은 정말 잘하시는 일 같아요”라고 하더라. 아들에게까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니, 정말 뿌듯했다.

 

Q. 아들의 ‘칭찬’이 제주올레 자동차를 바꿔준 것 아닌가?

맞다. 그 날, 제주올레 자동차를 바꿔주겠다고 큰소리쳤다. 당시 제주올레 사무국에는 ‘라츠’가 있었다. 폐차 직전의 차를 10만원 주고 사서는 탐사나 업무용으로 쓰던 때였는데, ‘라노스 벤츠’라며 자랑하곤 했다. 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자주 많이 나가고, 종종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데도... 10만 원짜리 차도 굴러가는데 백만원쯤 주면 더 좋은 차를 살 수 있겠지, 간단히 생각해 술자리에서 호언장담 했다.(술자리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한달 뒤 제주올레에 액티온 자동차를 보냈다. 보험까지 가입해서!)

 

Q. 무릉외갓집은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제주올레에서 올레 길에 있는 마을과 기업을 중매 서서 기업과 마을이 서로 돕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제주올레의 1사 1올레 결연)를 했을 때, 제주올레 친구기업인 벤타코리아도 당연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어서 마을 농산물을 구매해도 규모가 적어 마을에 큰 도움이 안되고, 마을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도 일시적이어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주민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었다. ‘올레 길을 걸으며 봤던 그 싱싱한 농수산물이 내 집으로 배달되면 올레꾼들도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연간 회원제 농수산물 직거래 서비스인 무릉외갓집을 떠올렸다. 

 

 

 

 

 

 

Q. 마을에 무릉외갓집 아이디어만 준 것이 아니라, 시스템 세팅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일반적인 도농교류 활동이나 사회공헌 활동과 비교하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다. 1사1올레를 하겠다고 손들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무릉외갓집 출범까지 벤타코리아 직원들이 얼마나 자주 출장을 왔는지 모른다. 사람들만 만나면 무릉외갓집을 홍보하고 회원을 모집했다. 다른 경영자들이 ‘김대현 사장은 회사 경영은 안하고 무릉외갓집 회원만 모집하느냐’고 걱정할 정도였다(실제로 무릉외갓집 초창기 회원은 김대현 사장의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무릉리 분들이 워낙 열심히 따라와 주어 지금까지 잘 성장하고 있다. 무릉외갓집과 제주올레 덕분에 벤타코리아는 제주에 외갓집이 생기지 않았나. 그걸로 충분하다. 

 

 

 

무릉외갓집: http://www.murungdowon.net/

 

 

 

Q. 이쯤에서 벤타코리아 ‘신상털이’를 해야겠다. 벤타코리아는 어떤 회사인가.

물을 이용해 공기를 정화하고 가습하는 독일 벤타에어워셔를 한국에 소개하고 판매하기 위해 1993년 설립한 회사다. 벤타에어워셔를 한국에 소개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제품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과 본질을 찾아주는 브랜드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벤타코리아를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브랜드 마케팅 회사로 키우고 싶다. 공기순환기(에어서큘레이터)로 유명한 보네이도의 다양한 냉·난방기기를 국내에 소개하고, 홈 베이킹 브랜드인 STAR BAKERY와 EGS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벤타코리아는 ‘함께 사는 사회, 함께 하는 기업’이라는 목표 아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문회사로 발전해 가고 있는 중이다.

 

Q. 최근에는 예술가 지원에도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그렇다. 올해부터는 남양주에 있는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집중 할 수 있도록 ‘갤러리퍼플 스튜디오(G.P.S.)’ 이름으로 작업실을 후원하고 있다. 현재 입주 작가는 7명이다. 예술가들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전시회 개최는 물론 기업인들이 매월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지원하는 후원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Q. 제주올레 후원도 모자라서 예술가 후원까지 나섰다는 이야기인가? 경영은 언제 하나?

CEO의 역할은 새로운 것을 보고 더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 직원들과 공유하고 소비자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올레나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들이 더 보이고 즐겁다. 각각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비즈니스와 문화예술 후원을 하나로 만들어 사회에 필요한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도 기업이나 기업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Q. 제주올레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제주올레가 더 발전하고 지속가능하려면 자연과 사람으로 준 감동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로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자연과 사람이 아름다운 길에서 예술이 살아 숨쉬는 길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고 싶다.